[서부전선] 1950년에도 절대 을은 있었다. 슈퍼갑과 을의 이야기
언젠가부터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무수히 많은 것들을 "갑과 을"로 구분짓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갑과 을은 1950년대에도 구태의연하게 있었던 것 같다.
한국 전쟁에서의 남북 두 쫄병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서부전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슈퍼갑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을"의 이야기다.
농사를 짓다 끌려온 남한군 남복(설경구)와 학생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한 북한군 영광(여진구)은 전쟁 중 부대가 전멸하자 자신 부대의 임무를 스스로 완수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남복은 비밀 문서를 잘 전달해야 하고 영광은 탱크를 지켜야 하는 상황!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독보적인 슈퍼을인 이 두 사람은 "목적"조차 분명하게 알지 못한 채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수가 죽기 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총살"이라는 어마무시한 사실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묻지도 따지도 못한 채 그들은 임무를 수행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고향에 돌아가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둘은 만난다. 영광이 남복의 비밀문서를 갖고 있는 채로!
영화는 이렇게 이 둘의 1:1 구도로 끝까지 진행된다.
사실, 1:1 구도로 이 영화가 크게 긴박함을 유지하고 있진 않다. 한국 전쟁이라는 소재 자체가 이 영화의 엔딩을 어느정도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뻔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이들이 "슈퍼 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본다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그들의 처절한 평범함과 무능함에 눈길이 간다.
<남한의 어느 마을에 도착해서, 기세등등 남한군 남복>
<중국군과 마주쳐서, 쫄아버린 남한군 남복과 한숨돌린 북한군 영광>
위의 두 스틸컷에서 나타나듯, 우리의 주인공들은 한국 전쟁의 이념이라든가 사상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 어디가 우위를 점한 상황이냐에 따라 그들의 입장도 천차만별 바뀌게 된다.
영화에서는 때론 남복이 "갑"이 되는 상황도 만들어 주는데, 노인과 여자, 어린아이만 남은 마을에선 군인인 남복이 그들의 갑이 되었다. 이념이라는 단어도 모를 법한 사람들이 그저 눈치를 보며 국기를 흔드는 장면에서 또다른 을을 향한 가슴찡한 슬픔을 느꼈다.
천성일 감독의 데뷔작 서부전선,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하지만, "슈퍼 을"일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가 곧 우리의 처지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관람한다면 복받치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전쟁영화 혹은 코미디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추천하지 않을 영화!
그러나 감동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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